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60세 정년 이후, 당신의 자리는 안녕하십니까?: 재고용 시대의 도래와 생존 전략
    경제공부 2025. 8. 31. 18:40
    반응형

    국내 기업 10곳 중 6곳이 60세 이상 근로자의 정년 연장보다 임금을 낮춘 재고용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인구 구조 변화와 연공서열 임금체계의 한계가 맞물린 복합적인 현상으로, 개인의 노후 준비와 일의 의미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며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질문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60세 이후,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조사는 이 질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답변을 보여줍니다. 기업 대다수가 정년 연장 대신 ‘재고용’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평생직장이라는 신화와 작별하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기업의 선택: 정년 연장 vs. 재고용, 무엇이 다른가?

    경총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6곳(61%)은 60세가 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할 때, 기존의 근로관계를 유지하며 정년을 늘리는 ‘정년 연장’이 아닌, 퇴직 후 새로운 근로계약을 맺는 ‘재고용’을 선호합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임금과 고용의 유연성입니다. 재고용을 선택한 기업의 절반 이상(50.8%)은 퇴직 전 임금의 ‘70~80%’ 수준을 적정선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84.9%의 기업은 희망자 전원이 아닌, 업무 성과 등을 평가하는 ‘선별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기업이 숙련된 인력의 경험은 유지하되, 연공서열에 따른 높은 인건비 부담은 줄이고, 인력 운용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모든 것에는 trade-off가 존재하듯, 기업은 고용 안정성 대신 비용 절감과 유연성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계약: ‘연령-생산성-임금 곡선’의 비밀

    기업의 이러한 선택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요? 경제학의 ‘연령-생산성-임금 곡선’ 이론은 이 현상을 흥미롭게 설명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근로자는 보통 젊었을 때 자신의 실제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나이가 들면서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습니다. 이는 젊은 시절의 기여를 나중에 보상받는 일종의 ‘지연된 보상(deferred compensation)’ 시스템이자,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이었습니다.

     

     

    한국의 강력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이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고령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생산성 곡선이 하강하는 시점에도 임금 곡선은 계속 상승하는 구조가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재고용’은 생산성보다 과도하게 높아진 임금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려는, 즉 오래된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으려는 시도인 셈입니다.

     

    먼저 겪은 미래, 일본의 사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사례는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일본 역시 대다수 기업(67.4%)이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을 선택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령자 고용률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빛과 그림자’는 명확했습니다.

     

    재고용된 고령자 다수는 임금이 정년 시점 대비 평균 63.8% 수준으로 하락했고,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며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용보험으로 임금 일부를 보전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령자 고용을 단순히 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으며,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구조적인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에게 ‘재고용 시대’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재무 설계의 근본적 변화: 60세 이후에도 이전과 같은 소득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국민연금 수령 시점까지의 ‘소득 크레바스(crevasse)’를 메우기 위해, 혹은 그 이후의 삶을 위해 새로운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저축을 늘리는 것을 넘어, 자산 소득이나 새로운 형태의 노동 소득을 계획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평생 학습’의 의무화: 재고용 시장에서는 ‘선별’이 기본값입니다. 과거의 경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하는 기술과 시장에 맞춰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큰 압박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서도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합니다.

     

    ‘일’의 의미 재정의: 60세는 더 이상 ‘은퇴’가 아닌 ‘전환’의 나이가 됩니다. 과거보다 낮은 임금과 다른 직무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자존심의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 인간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습니다. 소득의 크기를 넘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수단으로서 ‘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계약을 준비하며

    기업의 재고용 선호 현상은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구구조의 지각변동과 낡은 임금체계의 마찰이라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존재합니다.

     

     

    정부의 정년 연장 추진과 기업의 현실적 선택 사이의 괴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 전환의 시대에 어떤 사회적 계약을 새로 써야 할까요?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개인의 고용 안정성을 지켜줄 지혜로운 정책,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 상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임금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합니다. 당신의 60세 이후는, 바로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을지 모릅니다.

    반응형

    댓글